양림동을 걷다 보면 시간의 감각이 조금씩 뒤섞인다. 오래된 골목과 집, 시간의 흔적을 품은 건축물, 서로 다른 시대의 기억이 한 자리에 겹쳐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이 어우러지며, 하나의 장소 안에 여러 층위의 시간이 함께 존재한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모자장수는 이렇게 말한다. "시간은 움직이지 않아. 우리가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거야." 양림동은 그 말이 그대로 구현된 장소처럼 느껴진다.
이번 전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재현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앨리스의 장면을 전시장에 옮겨놓거나, 작품을 소설 속 캐릭터에 대응시키지도 않는다. 대신 양림동이라는 실제의 장소를 하나의 작은 세계로 바라본다. 마치 앨리스가 토끼굴 아래로 떨어져 도착한 세계처럼. 다만 이번에는 토끼굴이 없다. 대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장소가 있을 뿐이다.
그 세계 안에 작품들이 놓이고, 관람객은 그 사이를 걷는다. 시간과 기억, 관계와 욕망, 불안과 변화 — 작품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말을 건네지만,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서 만난 모든 것이 하나의 명확한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었듯, 이번 전시 역시 관람객 각자가 자신만의 질문을 발견하는 여정이 되기를 바란다.
2026.09.10-10.31
참여작가 : 김성지, 박경덕, 박성호, 박정구, 박정근, 송효근, 심은석, 염석인, 오은서, 위재환, 이수진, 이은래, 이이남, 임영규, 장수빈, 정국택, 정창이, 최무용, 최순임 전시디렉터 : 정헌기
|